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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달콤한 제목인지
이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문구는 현실에 지친 저에게 달콤하기 그지없는 유혹이었습니다. 본디 영화를 본다는 일 자체가 잘 가꿔진 환상과 환영 속에 두 시간 동안 빠져 있다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라도 상상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본다면 좀 더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좋았습니다. 왜 그런 말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계속 떠올리고 상상하다 보면 그것이 정말 현실이 된다고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주어지는 희망의 메시지들인데, 사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현실이 조금이라도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메시지만 가지고 버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세뇌하면서 버티고 버텨야 가능한 것이 바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입니다. 상상은 마냥 말랑하고 달콤한 솜사탕 같지만, 사실 비를 잔뜩 머금고 있는 비구름 같이 묵직하고 무겁습니다. 그것이 먹구름이 되어 언제 내 삶을 향해 허무함으로 쏟아져 내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월터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천둥 번개 소리에 무뎌지며 무지개를 향해 정말 뚜벅뚜벅 나아갑니다. 16년을 한 직장에서 뚝심 있게 일해온 사람의 저력이라는 것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도요.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든 배우
벤 스틸러는 워낙 웃기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이 영화 속의 월터와는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어딘가 위축되어 있고 소심한 도시의 남성인 월터의 모습은, 나는 정극을 할 수 없고 코메디를 하는 게 어울린다는 누군가들의 시선에 눌려있는 실제 배우와 연결되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저 웃기기만 한 배우가 아니듯, 월터 역시 소심하게 발만 구르는 사람이 아니라 닥쳐오는 일들을 무던하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인생에서 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면, 사람은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돌변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정말 조용하고 사람을 대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던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한다거나, 항상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던 사람이 혼자서 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거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늘 있는 일입니다. 사회화라는 형식 속에서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내 진짜 모습을 꾹 눌러 참고 있었던 사람들은 일순간 어떤 계기로 변화하게 됩니다.
나를 발견하다
월터가 전 세계를 누비며 찾아다녔던 25번째 사진의 피사체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결말은, 사실 파랑새 동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집 떠나면 고생, 지금 바로 여기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 결말. 그러나 그 깨달음은 반드시 어떤 풍파를 수반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월터가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마주한 25번째 사진과 모든 모험과 여정을 끝낸 후 마주한 25번째 사진이 주는 영감은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내가 있는 바로 지금 여기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역시 모험과 여행의 이유니까요.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자는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사는 월터의 가치를 몰랐지만,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준 사람이 내 가치를 알아주었다는 것 또한 내가 완성되는데 필요한 한 조각입니다. 그 모든 현실의 조각들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월터의 앞날이 다시 상상이 현실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한 번 해내본 사람에게는 그것이 바탕이 되어 나아갈 힘이 생기니 말입니다. 부디 오늘의 우리에게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움 모험과 발견이 생기기를. 이렇게 영화 속에서 헤매며 몸을 일으키며 다시 마음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