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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언맨과 블랙 팬서가 죽은 후, 마블 유니버스는 왠지 맥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때 우리를 설레게 하고 흥분시켰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벤져스'라는 이름 아래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지만, 전만큼 그들의 이름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합니다. 마치 서로에 대한 의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오래된 연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새로 나오는 마블영화는 설레임은 없지만, 잔잔한 편안함과 지루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의리로 객석을 채우게 됩니다.
그 안에서도 '앤트맨'이라는 캐릭터는 분명히 히어로이지만, 일반적인 사람들과 유독 가까운 캐릭터성으로 인해 흥미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 없고 정을 뗄 수 없는 묘한 캐릭터입니다. 지독히도 소시민적인 그의 행보에 그를 부족하다고 외면하는 것은, 역시 소시민에 불과한 나를 저버리는 것과 같은 묘한 죄책감이 있습니다. 물론 극 중 카페 주인은 스파이더맨이 아닌 그에게 12불을 받아냈지만요.
이번 이야기는 지독한 '딸바보'인 앤트맨의 이야기와, 우주에서 30년 넘게 혁명전사로 뛰었던 것을 가족들에게 숨기고 살았던 그의 장모의 이야기, 크게 두 파트로 진행됩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만나기 위해 노력하던 그들은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응원하고, 보듬어주며 퀀텀매니아의 독재자와 싸워나갑니다.
또한 다시 한 번 허무주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오스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역시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평행우주 속의 빌런 조부 투바키는 모든 평행우주를 경험한 후, 허무주의에 빠져 어치피 죽을 거 다 같이 소멸되어 버리자고 하며 모든 우주를 파괴하려고 듭니다. 이 영화의 빌런 '스캇 랭' 역시 수 많은 평행우주를 경험한 절대자에 가까운 힘을 가진 인물로 그 역시 허무주의 속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소멸시켜 버리려고 합니다.
평행우주라는 개념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모든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공간이라고 상정했을 때, 그 모든 것을 경험한 결론이 자꾸 '허무주의'라고 나는 것은 이해가 가면서도 참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결론입니다.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소리가 무색해집니다. 그저 과유불급이기 때문이라 한다손 치더라도, 영화마다 반복되는 빌런들의 허무주의는 개연성이 확실한 변명처럼 보입니다. 헛점을 찾아낼 수도, 나쁘다라고 할 수도 없지만, 교훈이 없는 쓸데없이 강한 빌런의 변명.
결말은 다시 한 번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것은, 결국 다시 한 번 사랑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극복하고, 해내고야 마는 위대한 사랑의 힘. 가족의 힘. 희생정신. 양자공간 속에서 만난 수많은 나는 너무나도 다 달라서 내가 나인데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딸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수많은 내가 힘을 합쳐 원래 나의 힘에, 안되도 4승 제곱 정도는 시켜주는 마법의 치트키.
가족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해, 이기는 싸움이 아닌 둘 다 지는 싸움을 택하는 아버지로서의 앤트맨 장면은 분명 신파적인 장면이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또 너무나 분명하게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있고, 절대 멀지 않은 곳에, 혹은 가깝지 않은 곳에 사는 예고없는 빌런이므로, 뻔하고, 흔하고, 혹자는 유치하다고 말하는 결론임에도, 그 뻔하고 뻔한 것이 그저 뻔하게 그 자리에 지켜졌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왜냐면 그 뻔한 결말이 결말이 되지 않아 생겨난 수많은 사람의 삶들이, 불행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결핍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수많은 불행이라는 우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가족애라는 테마가 현실에 반복되지 않는 일이 줄어들 수 있도록, 부디 이게 세뇌에 가까운, 지겹도록 뻔한 결말들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이야기는 부디 그 뻔한 레파토리를 오래도록 반복하여 이 세상에 뻔하게 행복하고, 뻔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들로 좀 더 충만해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