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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에 미치면 이렇게 됩니다, 의 정석
뮤지컬로도 인기가 좋은 <스위니 토드>는 팀 버튼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어둡고 음습한 작품입니다. 딸뻘이 되는 조안나를 관음 하는 터핀 판사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날 선 면도칼을 들고 선 반백 머리의 조니 뎁 역시 쓱 쳐다만 봐도 저 사람은 정상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터핀 판사가 처음 이발소를 방문했을 때, 터핀 판사의 목선을 따라 움직이는 면도칼을 보며, 영화 초반인데 설마 판사를 벌써 죽일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저 목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봤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꽤나 많이 반복되는 플롯인데, 권력을 지닌 못된 양반 혹은 귀족이 가난한 서민의 아리따운 아내를 탐하여 빼앗고, 아내를 빼앗긴 서민이 복수하는 서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권선징악의 통쾌한 결말로 끝났으면 좋았을 걸, 이 영화는 복수의 허무하고도 잔혹한 결말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한 이일지라도, 복수에 눈이 멀어 미쳐버리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린다는 교훈. 스위니 토드는 미치광이 거지로 떠돌고 있던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여버리고, 자신의 딸에게는 살인자로 낙인찍혀 버립니다.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죽였다는 절망 속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을 잃은 고통 속에 빠진 사람에 의해 자신 역시 복수의 칼을 받아 죽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고, 또 한 사람의 복수자를 낳은 비통한 결말입니다.
기괴하고 잔인한데도 매력적인 요~물같은 영화
앞서 포스팅했던 <빅 피쉬>의 에드워드가 팀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 중 가장 밝고 잘 생긴 미남이라면, <스위니 토드>의 벤자민 바커는 팀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 중 가장 어두운데 잘 생긴 미남입니다. 뮤지컬 영화이다 보니 조니 뎁의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더해져, 사람을 고기 썰 듯 죽여버리는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는 벤자민 바커는 안쓰럽고 매력적이게 느껴집니다. 간혹 악인에게 서사를 입히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이것인가 싶습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저 사람이 분명히 악인이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에게 어떤 매력이 있으면,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 그리 되었겠지, 라며 연민하게 되는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은 너무 안타깝지만, 스위니 토드의 결말이 허무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악인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 내려지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은 당연히 독을 품게 되고 제 정신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을 넘지 않아야만 또다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며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악에 물들지 않고 악을 벌할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정의라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에만 있는 꿈같은 것이 되었음에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여전히 정의가 있고,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왜 항상 권력자들은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한 것을 탐하는가?
사실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된 권력자의 탐욕은 오랜 역사동안 반복되어 온 뿌리깊은 악행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단순히 권력을 쥐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고, 도덕을 행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나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것을 진실로 행하는 사람을 거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것을 올바르게 행한 사람이 위인으로 남으니 말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것은, 그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너무나도 잔인했던 이 영화가 뮤지컬로 다시 상영되고 지속되는 것은, 이 가슴 아픈 플롯이 어딘가에 반복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럼에도 그것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누군가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대전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전쟁이 반복되고 있는 21세기에는 좀 더 나은 결말이 나올 수 있기를 뜬금없이 바라봅니다.